삐라주(Pirayú)
어느 새 약 한 달 반 동안의 현지적응훈련이 현지 언어 시험으로 마무리 되고 이제 2년간 각자 활동해야 할 임지로 떠나 10일간 생활하고서 다시 수도로 돌아오는 OJT(On the Job Training) 기간을 가지게 된다. 각 나라의 코이카 사무소 방침에 따라 일정과 진행 방식이 모두 다르긴 하지만 현재 파라과이 사무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현지적응훈련 일정에서는 OJT가 끝나고 나서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짐 정리와 필요한 물품 구매, 수료식 등을 위한 약 3일간의 시간만을 보내고서 다시 각자 임지로 돌아가야 한다. 즉 OJT가 거의 훈련의 종료인 동시에 본격적인 활동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솔직한 마음에 내가 과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들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내가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지만 현지적응훈련을 받으면서 하루 빨리 임지로 파견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맴돌았다.
내가 파견될 곳은 삐라주(Pirayú)라는 곳으로 수도인 아순시온에서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지만 이 곳의 고속도로인 루따(Ruta)에서 떨어져 있는 마을이기에 비교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그래서 그런지 비교적 낙후된 작은 마을이다. 선임 단원이 알려주신 정보에 의하면 큰 슈퍼에 가거나 은행, 환전 등의 업무를 보기 위해선 버스를 타고 약 30~40분가량 이동하여 다른 동네로 가야 한다고 한다. 시골이기에 인터넷 또한 전용 회선이 들어오지 않기에 컴퓨터에 USB 형식으로 꽂아서 사용해야 하는 종량제 인터넷 와이브로를 사용해야 한단다. 나를 포함한 7명의 우리 기수가 각자 파견될 임지 중 가장 시골로 꼽히는 우리 동네. 사전 조사와 전해 듣게 된 정보에 의하면 살기에는 그리 편하지 않겠다 생각하였다. 하지만 서둘러 가고 싶었다. 그냥 막연히 가고 싶었다.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그 곳에 가서 어떤 일을 시작 하게 될지, 어떤 상황에 놓이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어서 가고 싶었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의 바람은 거의 간절함에 가까웠다. 이 마음이, 그 곳에 향한 내 마음이 2년간 이어져야 할 텐데, 그 곳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2년이 되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나의 임지 삐라주. 이제 정말 실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현지적응훈련 중에 으브꾸이(Ybycuí)라는 곳에 코이카의 도움으로 지어진 농장으로 1박 2일간 짧은 농장체험을 떠난 적이 있다. 하루 일과를마친 뒤 바로 으브꾸이로 떠나는 일정이었기에 해가 진 뒤 으브꾸이에 도착하였고 으브꾸이 초입에 있는 호텔로 바로 이동하여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달이 밝은 날이었고 구름도 꽤나 있었지만 그럼에도 공기가 맑은 시골인지라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호텔에 있던 여러마리의 개. 파라과이의 개들은 대부분 한국의 개들보다 순해 보인다. 도심쪽에서는 밤 중에 몰려다니는 개들을 조심해야 하지만 그 덩치에 비해선 상당히 순해보이는 거리의 개들.
아침을 먹고 농장으로 향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이 날 한 일은 토마토 심기. 단순 농장 체험이라 오전 중에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만 일하였다. 잠시동안 이었지만 밭에서 허리를 숙여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던 그 시절이 오버랩 되었다. 반갑고 그리운 추억의 시간들. 다시 돌아갈 순 없지만,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있어 참 좋다.
농가에 있던 앵무새. 이 곳 파라과이에선 앵무새의 날개 끝 부분을 약간 잘라내어 날지 못하도록 한 뒤 키우고 있는 집을 종종 볼 수 있다.
일을 마치고 농가 마당의 큰 나무 아래에서 먹은 점심 식사. 이 곳에서 키우는 양상추와 토마토를 구입 할 수 있었는데 한국의 반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바로 눈 앞에서 뽑아주는 양상추와 싱싱한 토마토를 구매할 수 있었다.
거의 매일을 어학원과 숙소만을 오가던 일정 속에서 도심을 벗어나 농장과 파라과이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