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_27/KOICA 국외 여행_Bolivia, Perú

2일 -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 수크레 → 포토시 → 우유니

daydream187 2014. 12. 28. 08:40

수크레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 버스는 조금씩 도시를 벗어났고 난 잠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주변 경관은 도시가 아닌 시골이 되어 있었고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점차 해는 지고 달이 떴다. 거의 보름달이었다. 원래 달이 이렇게 밝았나 싶을 정도로 그 밝기는 사람이 만들어 낸 빛이 하나 없는 산과 들을 밝게 비추었고 달을 두 눈으로 직접 쳐다볼 때엔 눈살이 찌푸러질 정도였다. 이 곳의 태양이 한국 보다 강한 만큼 달빛도 밝은 것일까.



버스는 저녁 8시 즈음 어느 작은 마을의 식당에 약 20분간 정차했다. 이 시간을 이용해 저녁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버스에서 마실 음료수를 사고 나왔다. 그래도 남은 시간 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중 팝콘을 파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얼마인지 물어 봤다. 외국인이 말을 건 것이 쑥스러운지 부끄러운 목소리로 1 볼리비아노라고 대답했다. 팝콘을 사들고 버스에 탑승하니 곧 출발했다. 그런데 길이 심상치가 않다. 지금껏 달려온 길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의 길이 그냥 산길이었다면 바뀐 길은 굽이치는 험준한 산악 지역 사이사이를 구불구불 따라 오르내리는 거친 길이었다. 도로 상태 또한 좋지 않아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차는 승차감에도 큰 악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잤다. 정말 이러한 상황에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 감사하다. Thanks God.

 

몇 번 잠에서 깨다 자다를 반복하다 햇살이 비춰오길래 시계를 보니 약 오전 6. 본래 예정대로라면 약 한 시간 뒤에 수크레에 도착해야하지만 이 곳은 남미. 게다가 출발도 늦게 한 상황. 언제 도착할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의자를 세우고 정신을 차리고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예상치도 못한 풍경에 잠시 놀랐다. 주변 자연 환경은 푸른 빛이 많이 사라진 메마른 산악 지형이었고 햇살이 산과 저 멀리 산 윗자락에 놓여 있는 마을을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아름다웠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곳이 수크레였고 버스는 놀랍게도 연착하지 않고 본래 예정된 오전 7시 즈음에 도착하였다.


다음 행선지는 우유니로 가기 위한 길 중 마지막 관문인 포토시였고 터미널 안 한쪽 벽에 그려진 회사별 운행 시간표로 일정을 계산하였다. 난 우유니에 오후 7~8시 즈음에 도착하여 여행사를 통해 투어를 예약하려 한다. 포토시에서 우유니까지는 약 4시간. 그럼 포토시에서 약 3~4시에는 버스를 타야한다. 그럼 포토시에 약 3시에는 도착해야 한다. 수크레에서 포토시까지도 약 4시간이다. 그럼 수크레에서 오전 1030분 즈음에는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럼 수크레에서 남는 시간이 약 3시간 30. 주어진 시간 동안 수크레를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공원인 25 de mayo를 향해 길을 물으며 걸어갔다.





산 위에 놓여 있는 마을인 만큼 길이 파도 마냥 굽이치고 있었고 그 모습도 멋있었다. 실제로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겠지만 난 이런 굽이치는 형태로 산자락에 있는 마을에서 멋을 느끼기에 나에게 다가온 수크레의 인상이 참 좋았다. 공원을 향해 걷는 중 공원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 또한 너무 멋있었다. 스페인 식민 시절에 지어진 것들인지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축 양식이었고 그 것들을 너무나 깨끗하게 지켜오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은 주변은 여유가 넘쳤고 그 여유가 좋았다. 마침내 중심에 도착하니 그리 크진 않지만 멋들어진 25 de mayo 공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예전 인터넷에서 언뜻 수크레에는 그 곳의 매력에 빠져 장기간 머물러 있는 외국인들이 많이 있다고 보았었다. 그 사람들이 무슨 매력에 빠졌는지를 알 것 같았다. 천천히 공원 주변을 둘러보던 중 중심에 있던 석상 위에 앉아 있던 작은 꼬마 소녀에게 괜찮은지 물어본 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공원을 조금 더 둘러보다가 벤치에 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을 찍은 아이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아 말을 걸어왔다.



어디에서 왔어?”

 

한국.”

 

나 동전들 모으고 있는데 한국 동전 주면 안돼?”

 

... 나 지금은 파라과이에서 살고 있어서 파라과이 동전 밖에 없어. 그거라도 줄까?”

 

. .”

 

이건 50과라니 동전이고 이건 100과라니 동전이야. 가져.” - 한국 돈으로 따지자면 150과라니는 약 40원이다.

 

고마워.”

 

그 후 이런 저런 가벼운 대화들을 나누다가 둘 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고 누구를 기다린다는 그 아이에게 인사한 뒤 난 다시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을 중심부 중 한 쪽 끝자락까지 걸어갔다가 높은 곳에서 마을을 보고 싶은 마음에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을 따라 지어진 집들이 아름다웠지만 역시나 살기에는 힘든 환경이었다. 그 언덕 한 번을 오르는데도 그렇게나 헥헥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다니는 중 어렵지 않게 보이던 것은 스페인어 학원이었다. 아마 이 곳에서 장기로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학원인 듯 했다. 그런 학원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을 보니 정말 장기 체류자가 꽤나 있구나 싶었다. 숨을 내몰아쉬며 걷던 중 결국 내가 향하던 언덕 꼭대기에 올라섰고 그 곳에서 수크레를 바라보았다. 참 좋았다. 나도 이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본래 목적지는 우유니이고 그 곳에서 날씨나 한 번도 고산 지대에 가보지 못한 내 몸 상태에 대비하기 위해 빡빡한 일정 속에 이 곳에서 하루를 머물기도 버거운 상태였다. 아쉽지만 오늘은 그냥 떠나는 걸로 하고 내 노년기에 머물러 보고 싶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다시 언덕에서 내려와 중심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사람들이 많아졌다. 조금 복잡하기도 했지만 이런 활기참도 좋았다.

 

공원 근처에 있던 한 까페 겸 식당에 들어가 공원이 보이는 창가쪽 자리를 잡고 아침 식사를 주문했다. 약간 반 지하였지만 그래도 밖이 보여 좋았다. 까페 사장처럼 보이는 한 아저씨가 나에게 영어로 서비스 상태를 물어본다. 스페인어로 괜찮다고 대답하니 오, 스페인어 하네 라며 놀란다. 이 아저씨는 외국인으로 보였다. 이 곳의 매력에 빠져 터전을 잡기 위해 가게를 차린 것일까. 오랜만에 잡힌 인터넷도 하고 일정도 정리하고 여행 가계부도 쓰고 이리 저리 잡다한 일들을 하며 아침을 먹던 중 앞 유리창이 어두워지더니 누군가 똑똑 두드린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 한 늙은 노인이 거꾸로 뒤집은 모자를 나에게 내밀며 말을 한다. 구걸을 하고 있다. 거절 의사를 표시하고 다시 하던 일들을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또 왔다. 이번에는 내가 먹고 있던 아침을 좀 달란다. 난감했다. 무엇인가를 그냥 주는 것에 대해, 특히 그 것이 돈이라면 반대하는 입장이지마는 당장 먹을 음식에 대해서는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때때로 음식이나 음료수는 주기도 한다. 손이 닿는 곳이었다면 그 사람에게 좀 나눠줬으련만 가게 밖이었기에 얼마 남지도 않은 음식을 들고 나가서 건네주기도 뭐했다. 이번에도 거절 의사를 표시하고 하던 일을 했다. 마음이 찜찜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들어 창 밖을 보니 그렇게 구걸하고 있는 몇 사람들이 보였다. 답답하고, 슬프고, 화나고, 미안했다. 이 곳에서 구걸하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은 채 이 곳의 매력에만 빠져 흐흐 거리고 있던 내가 바보 같아 보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다소 무거워진 마음으로 앉아 있던 중 포토시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굽이치는 산을 오르내리며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주변 경관들을 구경하며,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포토시로 향했고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우유니로 향하는 버스들이 있는 구 터미널로 이동하여 곧 떠날 우유니행 티켓을 사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우유니로 향하는 길도 험준한 산악 지형이었고 그 만큼 풍경은 멋졌다. 어느새 해가 졌고 캄캄한 산을 헤쳐 달리던 중 산 아래쪽에 우유니의 불빛이 보였다.

 

우유니에 도착하니 머리가 조금씩 아파왔다.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고산 증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리 큰 고통은 아니었기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행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때 시간이 약 오후 8시였는데 아차 싶었다. 이미 대부분의 여행사가 문을 닫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은 다음날 새벽 3시 즈음에 출발하는 일출 투어를 등록하는 것이었는데 이리 되면 일정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여행사가 있는 주변을 돌아다니던 중 천만 다행으로 본래 내가 가려고 했던 여행사의 문이 아직 열려 있었다. 그 곳에 들어가 일출 투어를 물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예약자가 아무도 없어 다음날 일출 투어는 잡혀있지 않단다. 게다가 오늘 일몰 투어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바람이 너무 강하고 구름도 너무 많이 껴서 별로였다는 후기를 들었단다. 우유니 소금 사막 투어의 관건은 날씨라고 듣긴 했지만 이건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는게 아니니 그저 운에 맡기는 수밖에. 결국 일출 투어는 하지 못할 것 같고 다음날 일일 투어를 물어 보니 이 또한 예약자가 거의 없는 상태라 다른 여행사와 같이 섞여서 갈 수 있는 상황이란다. 어찌됐든 투어는 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언제까지 결정하고 알려주면 되냐고 물어보니 일일 투어는 오전 1030분에 출발하니 오전 8시까지 와서 확정해주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이제는 숙소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여행사에 물어보니 어느 한 곳을 추천해줬다. 숙소의 상태와 상관없이 여행사와 연결되어 커미션을 받고 그냥 사람을 보낼 수 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정해놓은 숙소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가서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직접 가서 확인하니 상태도 가격도 괜찮은 듯해서 그냥 그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 그렇게 방에 짐을 푸는데 점점 머리가 아파왔다. 이 두통의 원인이 장시간의 버스로의 이동이 아닌 고산으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머리가 아파오니 짐을 풀고 뭐고 그냥 아무것도 쓰러져 눕고 싶었지만 꾹 참고서 짐을 대충 풀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머리가 아파오니 다음날 일출 투어를 신청하지 못한 게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아마 오늘 푹 자고 나면 내일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비교적 일찍 침대에 누웠다. 어찌됐든 간에 드디어 볼리비아에서 목표하던 우유니에 도착하였고 이제 다음날 여행사로 찾아가서 투어를 신청하고 우유니 사막을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