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T(On the Jop Training) 기간 - 3
OJT 기간 동안 머문 별장은 참 좋았다. 시설, 안전, 청결 모든 면에서 좋았지만 그 중에서 부족한 점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인터넷 사용을 할 수 없었다는 것. 그나마 다행히 기관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었지만 그 것도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본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울 정도로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한 참 느린 속도였기에 항상 참을 ‘忍’을 마음에 새기며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관이 열려 있는 시간은 오후 5시까지. 그 때 퇴근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완전한 외톨이가 되었다. 나름 겨울인지라 5시가 되면 해가 떨어져 캄캄하기 그지없어 밖으로 다니기가 힘들었고 또한 지내고 있는 집의 대문은 항상 잠가놓았었는데 내가 출입할 때 마다 시끄러운 벨을 눌러 관리인을 불러 낸 다음 커다란 자물쇠를 열고서야 오갈 수 있었기에 그러기가 너무 미안하여 집에 한 번 들어왔다 하면 밖으로 거의 나가질 않았었다. 해가 진 뒤 인터넷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위를 둘러볼 때 어김없이 만나는 것은 지구 반대편으로 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주는 낯선 동네와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밤공기. 말 그대로 낯선 곳에 떨어진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홀로가 되었단 걸 깨달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위태로운 존재일수도 있단 상황임을 발견하였음에도 이를 조금이나마 이겨내기 위한 인터넷이라는 지푸라기도 움켜쥘 수 없는 이 시간. 머리로 생각하기엔 뭔가 외줄타기처럼 불안하기도 한 아슬아슬한 시간일 수도 있겠다, 나름 외로움과 절망에 빠질 법도 한 시간이겠다 생각했지만 그러나 실제 내가 느끼는바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평안했다. 불편함이 있을지언정 불행함은 없었다.
순간 군복무를 마치고 가진 것이라곤 근거 없는 자신감과 그리 크지 않은 노잣돈, 등교용으로 쓰이는 백팩 하나와 크로스백, 침낭,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밖에 없는 모습으로 호주를 향해 떠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메리칸 드림처럼 왠지 호주에만 가면 좋은 직장을 얻어 현지인들과 친하게 지내며 서양 문화와 생활을 즐기고 영어 실력도 키우고, 또한 벌어들인 돈을 저축하여 재미있고 보람찬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으로 호주로 향했던 그 시절. 그러나 마주친 현실은 미국발 경제위기로 메말라 있는 일자리와 언어실력의 한계로 인한 의사소통의 부재, 외딴 곳에서 처절하게 느끼는 나 홀로라는 느낌, 군중속의 외로움 따위로 무장된 결코 녹지 않을 듯한 차가운 얼음 같은 존재였다. 스마트 폰은 고사하고 노트북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친숙한 존재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에 움켜쥔, 아껴 사용하던 해외 통화용 전화카드와 또 다른 손에 움켜쥔 일명 ‘워홀러 폰’인 최저가 핸드폰. 익숙하고 친숙한 존재와의 소통이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실낱처럼 위태롭게 유지되던 살얼음판 같은 현실을 걷다 견딜 수 없는 무거운 짓누름을 이기지 못해 결국 깨어진 구멍으로 깊숙이 빠져 온 몸을 덮쳐 오는 차디찬 물속을 벗어나기 위해, 온기를 찾아, 다시 물 밖으로 올라올 구멍을 찾아 허우적대던 그 시간들. 그러나 나를 물속으로 밀어 넣은 그 얼음판에도 솟아오를 구멍은 존재하였고 그 온기를 향한 통로를 통해 차가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힘겨운 시간 끝에 나름 괜찮은 일자리를 찾게 되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과 따뜻함을 만들었던, 온기가 감도는 곳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정말 따뜻했던 것인지, 아니면 몸서리치게 차갑던 그 상황으로 인해 지쳐있던 내가 따뜻하게 느낀 것인지, 아무튼 어떻게 구하게 된 일자리도 사실 사람들 사이에선 악명 높은 그런 곳이었지만 난 그 곳에서 평생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시간들을 보냈다. 온기를 찾기 시작한 뒤론 거의 모든 시간들을 따뜻함을 느끼며 살아갔고 그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동남아에서 더 여행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차가움 뒤에 느꼈던 그 온기를 아직 뚜렷이 기억하지만 한편으론 초기 시절 느꼈던 그 차가움 또한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되어 내 삶의 뼈와 삶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조각을 완성하고서 한국에서 지내다 다시 한 번 교환학생으로 해외에서 홀로 생활 할 기회를 가졌을 때, 내가 간절히 원하던 기회였기에 너무 기뻤지만 사실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예전 그 낯선 곳에서의 참을 수 없는 차가운 기억이, 광야에 홀로 내버려진 처절한 존재였던 기억이 다시 한 번 올라와 두려움에 휩싸여 출국 직전엔 남 몰래 가슴 서려하며 한국을 떠나기 싫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두려움에서 끝났을 뿐, 그 교환학생 시절동안 차가운 순간 없이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한국으로 무사귀환 하였었다.
이제와 생각해 볼 때 처음 호주에서 물속에 빠진 순간, 그 차가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도망쳤다면 그 참을 수 없는 허우적거림이 내 마음의 트라우마가 되어 낯선 곳에서 홀로 서기 위한 도전과 기회들을 모두 놓쳐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국 버텨냈고 지금 이 자리에 난 서있다. 아마 호주에서의 시린 경험이 없었다면 난 이 홀로의 시간들을 견뎌내지 못했을 지도, 아니 코이카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해냈고, 지금도 잘 해내고 있다. 나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채 이런 저런 경험들을 통해 내가 단련되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참 감사하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에게서 물러서지 않게 해주었음을, 물러서지 않고 마주했던 그 시간들이 이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들이 되었고 또한 내 삶의 뼈와 살이 되어 주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