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방으로 이동할 일이 있었다. 동네 버스를 타고서 큰 도로로 나와 갈아탈 버스를 기다렸다.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타기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한 번 더 갈아탈 생각을 하고서 그 쪽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얼마 가지 않아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하지만 조금은 좋아 보이는 2층 버스였기에 내가 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손을 들어 탑승 의사를 밝히니 흔쾌히 세워준다. 나이스. 1층에 빈 좌석이 있기에 그 곳에 앉고 버스비를 지불하였다. 크고 좋은 버스이니 만큼 요금이 비교적 비쌌다. 하지만 그 만큼 더 버스 상태가 양호하니깐, 이라고 생각하며 불평하지 않고 요금을 지불했다. 그런데 이 버스, 괜히 나를 태워준 버스가 아니었다. 크고 좋은 버스였음에도 가는 길에 사람들이 손을 드는 족족 모두 태워버린다. 그 만큼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되어 이동 속도가 느렸고 탑승하는 사람들의 수는 좌석의 수를 넘어선지 오래. 그러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느렸으나 가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으나 나는 앉아 있는 덕분에 그닥 불편하지 않았다. 파라과이에 조금은 적응했나보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이것이 복선이었음을.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가던 중 내가 있던 1층에 남자 아이 둘과 여자 아이 하나, 그리고 젊은 어머니와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 사람, 이렇게 총 5명의 가족이 들어왔다. 이미 좌석이 가득 차 있었기에 이들은 복도를 점령하고서 의자에 기대앉았다. 그 중 작은 여자 아이가 안쓰러워 그 아이를 들어 올려 내 무릎에 앉혔다. 한국이었다면 이렇다 할 말도 없이 다른 이의 자식을 마음대로 들어 무릎에 놓는다는 게 웬 미친놈 취급을 받을 수 도 있는 일이지만 이 곳 파라과이에선 그냥 평범한 일이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으나 그 여자 아이는 조금 불편했는지, 혹은 낯선 동양인의 무릎에 앉는다는 게 당황스러운지 그냥 내려 복도에 대충 걸터 앉아있던 엄마의 품에 안겼다. 그와 동시에 아무 말 없이 내 무릎과 앞좌석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으로 들어와 앞좌석의 등받이를 붙잡고서 가는 다른 남자 아이 하나. 이 또한 한국이었다면 이 무슨 버릇없는 녀석이 말도 없이 남의 좌석 사이에 들어와 서서 가냐고 말이 나왔을 법도 하지만 여긴 파라과이. 고로 평범. 다른 남자 아이 하나는 일찌감치 저 멀리 다른 좌석의 발치의 작은 공간을 차지하여 앉아서 가고 있었다.
그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서 버스에 몸을 맡기고 한참을 가던 중 그 여자 아이, 바로 내 좌측 복도에 앉아있던 엄마의 품에 안겨있던 그 아이가 갑자기 희멀건 뭔가를 뱉어낸다.
잠시만.
그 양이 뱉어내는 정도가 아니다. 뱉어내는 그 시간도 상당히 길다. 그리고 주기적이다. 맙소사, 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지 태연하게 주섬주섬 주변에 있는 자신의 짐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아이의 턱 아래에다 받친다. 자연스레 그 봉지를 아이의 손에 쥐어주고 자신은 다시 이미 딸아이가 뱉어내버린 것들을 안 입던 옷가지 같은 것으로 훔쳐낸다. 문제는 이 일이 내 왼쪽 무릎에서 10시 방향으로 20cm 떨어진 곳에서 벌어졌다는 것. 여자 아이가 조금만 더 파이팅이 넘치는 아이었거나 배에 힘을 줬더라면 내 왼쪽 다리는 이미 아작 났을지도 모를 상황. 따라서 그 모습을 별로 지켜보고 싶지 않았으나 내 다리를 살려내기 위해선 긴장하고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는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한껏 뱉어낸 덕분인지 전보다 훨씬 평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나와 내 앞좌석 사이에 서서 가던 남자 아이는 다리가 불편했는지 내 다리 사이에 깊게 들어와 주저앉더니 아무 말 없이 내 왼쪽 무릎에 손을 대고 그 위에 엎드린다. 아, 파라과이. 그 아이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쿨내나는 모습으로 아무것도 아닌 척 그냥 그리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내 무릎에 엎드려 있던 아이가 엄마를 부르더니 무슨 이야기를 한다. 뭔가를 건네주길 바라는 듯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엄마가 주섬주섬 뭔가를 찾아 남자 아이에게 건네준다.
잠깐, 봉지?
남자 아이는 그것을 받아들고서 얼굴 아래에 고이 펼쳐든 다음 깊은 명상에 빠진 것처럼 가만히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혹시, 설마, 제발.
그러나 내 작은 소망과는 상관없이 이 아이, 시작했다. 거침없이 입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토사물들.
아아아...
바로 20cm 떨어진 곳에서 이런 일을 보았는데 이젠 내 다리 사이라니. 내 그리 긴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평생 내 다리 사이에서 토를 하는 아이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남은 평생 동안 이런 경우를 또 겪게 될 것 같지도 않다. 아니, 겪고 싶지 않다. 그나마 정말 다행인 것은 여동생마냥 이 아이도 그리 파이팅이 넘치지 않게,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하게 볼 일을 보고 있다는 것. 정말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당장 내 다리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믿기지 않았으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격동의 순간이 실제로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던 그 시간이 끝났고 이 아이 또한 한 차례 일을 치루고 나서 평안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또 다시 내 무릎에 손을 얹고 엎드린다.
정신이 혼미해지던 시간이 지나 내가 내릴 곳이 되었고 버스에서 내려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만한 곳으로 간 뒤 혹시나 내 몸에 참사가 일어나진 않았는지 얼마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이상 무. 정말 다행이었다. 행여나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났다면 막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며칠 머물러야 하는 상황에다가 가지고 있는 옷이라곤 잠옷조차 가져오는 것을 깜빡해버려 단벌 신세였던지라 정말 어찌했었어야 할지... 어쨌든 내 다리는 무사했고, 비교적 얌전히 일을 치러준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 고마웠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통해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정말 고마워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