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뒤 코이카 일반봉사단원이 되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고, 듣고 싶었던 수업을 듣고, 책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동기가 있었고 목표가 있었기에,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기에 매주 비슷한 일정이 틀에 박힌 듯 반복되고 있었지만 절대 지루해 하거나 벗어나고픈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좋았다. 삶 자체가 좋았다. 뚜렷이 이루고 싶은 목적이 존재했고 조금씩 준비되어 간다는 것이 좋았다. 또한 곁에 함께 공부하는 친구가 있어 좋았다. 같은 학교, 같은 과인 한 친구는 폴란드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 휴학을 하고 스페인어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고 남미를 체험하고자 그 곳에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때에 페루의 수도 리마로 한 학기동안 다시 교환학생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우리 둘은 비슷한 시기에 남미로 떠났다. 2012년 한 해 동안 그 친구와 대학교 중앙 도서관에서 거의 매일을 함께 공부했다. 남미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함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소 생활가운데에서도 묘한 느낌으로 다가와 가슴 속에서 떠오르던 한 단어가 있었다. ‘비주류’라는 단어.
  전자공학부라는 전공 아래 나와 같이 졸업을 앞 둔 4학년은 보통 세 가지 종류의 학생으로 나뉘었다. 이미 취업이 된 학생,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 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 하지만 난 취업도 아닌, 대학원도 아닌, 어학연수도 아닌, 유학도 아닌 해외봉사. 출국에서 귀국까지 비행기 값과 생활비, 주거비, 귀국 정착비 등이 지원되지만 그 길들과는 분명히 다른 이 길. 자신의 앞길을 준비하고 있는 같은 과의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모두가 큰 물살 속에서 바다에 닿기 위해 치열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저 멀리 언덕 위에서 홀로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속에 불안함이 전혀 없었다라고 말 할 수 없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혹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되지 않는다면, 시도조차 못하도록 남미에서 컴퓨터 교육 분야 수요가 나오지 않는다면 난 그저 공중에 붕 떠버리는, 이도 저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졸업유예가 되지 않는 우리 학교인지라 졸업을 하고서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난 뭐가 되는 것일까. 혹시 다시 취직을 향해 방향을 돌려 그를 준비하고,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볼 때에 면접관들이 졸업하고 뭐했냐고 물어보면 어떡할까... 이런 상황이 될까봐, 장거리 이동 중 무리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철새가 되어 버릴까봐 불안한 요소를 제거할 요량으로 취직준비를 병행하는 것에 대해 아주 잠깐이나마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코이카 봉사단원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고 반드시 코이카를 통해 남미로 가겠노라는 결심이 내 속에 있었지만 그와 함께 공존하고 있던 작은 불안함이 그 만족감과 결심에 밀려 내 가슴 한 구석으로 밀려났을지언정 그 존재 자체가 소멸되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정했다. 코이카만 준비하기로.
  내 꿈 앞에서 비겁해지긴 싫었다. 그런 불안으로 인해 떨리고 흔들릴 정도의 정신상태라면 행여 그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그 뒤에 맞닥뜨릴 상황에 대해서 당당해질 수 있을 거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결심을 다지기 위해, 뒤돌아서지 않기 위해 삭발하는 운동선수들의 마음이 이러한 것일까. 타협하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난 코이카 준비에만 전념하였다.


Posted by daydream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