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익숙함

2014. 11. 10. 18:41 from 2013_27/KOICA_Paraguay




친형 결혼식이 있어 국외 휴가를 사용하여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형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많은 고민을 했다. 한국을 다녀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본래 그 시간과 왕복 비행기 삯이 아까워 국외 휴가로 한국을 다녀 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부모님은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셨다. 마음 같아선 당장 오라고 하고 싶으셨겠지만 내가 남미에서 보낼 수 있는 국외 휴가의 기간에 제한이 있다는 것, 한국으로 오가는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 그리고 내가 다른 세상을 좀 더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시기에. 형은 그냥 오지 말라고 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게 본인이 원하는 것이란다. 사실 한국으로 가지 않는 것으로 마음이 조금 더 치우쳐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형이 결혼하는 순간에 내가 다른 나라는 여행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내가 여행하는 동안 지구의 다른 한 쪽에서는 나와 피가 섞여있는 친형이 평생 한 번 있을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떠올려 보니 도저히 마음 편히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한국으로 떠나기로 하였다.

 

국외 여행으로 9일을 사용하였다. 21일을 쓸 수 있으나 남은 기간을 이용해 꼭 보고 싶었던 페루의 마추픽추와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은 가고 싶었기에. 그러나 사실 말이 9일이지 거의 지구 반대편에서 마주하고 있는 한국과 파라과이를 오가는 시간이 엄청나기에 9일이 정말 9일이 아니었다. 내가 끊은 비행기 티켓은 비교적 괜찮은 티켓이었으나 경유지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포함하여 총 약 40시간이 소요되는 일정이었다. 40시간. 왕복 80시간.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대략 4~5일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너무 짧았으나 애매하게 있는 것 보단 그냥 짧게 치고 빠지는(?) 일정을 선택하였다.

 

그렇게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였고 다가오는 형 결혼식에 맞춰 한국으로 향했다. 파라과이에서 출국 할 때에 길거리에 서서 현재 온도를 나타내는 계기판은 40도를 찍고 있었다. 계절상으로 봄이었으나 파라과이답게 무서운 더위로 나를 위협하고 있었고 그 위협에 맞서 나는 최대한 가벼운 복장인 반팔, 반바지, 샌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 복장 그대로 나는 비행기를 탔고 이동하는 도중에,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였을 때의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후드 재킷을 가지고서 기내에 탑승하였다. 그렇게 장장 약 40시간이 지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그 긴 시간 동안 눕지 못하고 이동을 하다 보니 발과 다리가 퉁퉁 부었었다. 샌들의 부직포는 실제 발 사이즈보다 훨씬 넉넉하게 조절하여 헐렁하게 신고 있었으나, 한국에 도착할 때 즈음엔 붓기로 인해 그 넉넉함도 어찌 할 수 없었던 부직포의 죄어옴을 견디지 못하고 한 번 더 그 정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장거리 이동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 꼬질꼬질한 모습을 자랑하며, 그리고 11월에 접어드는 한국의 계절에 전혀 맞지 않는 복장으로 당당하게 입장하며 약 17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나는 공항에서 곧장 지하에 있는 KTX를 타고 이동하기로 되어있었기에 건물 안에서 추위를 느끼지 않던 나는 반팔, 반바지, 샌들 복장에서 후드 재킷만 걸친 채 대구로 향하였다. 모두들 긴 바지에 외투를 걸치고 있는 계절의 모습 속에서 여름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복장으로, 그 것도 커다란 이민 가방을 질질 끌며 다니는 내 모습이 분명 이상했으리라. 연예인이라도 된 양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고향으로 입성하였다.

 

삐라주에서 한국으로 향하기 위한 짐을 싸는 순간부터 한국에 도착하여 대구로 향하는 이 순간들 동안 사실 내가 한국에 간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었다. 짐을 쌀 때는 그 느낌이 그냥 단순히 약간 긴 시간 동안 파라과이의 다른 지방에 다녀오는 듯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 휴가가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내가 한국에 있지만, 내 몸이 한국에 있지만 뭔가 내 정신의 일부는 이 곳에 있지 않는 듯 한 느낌.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고 있는 듯 한 느낌. 그 곳에 존재하고 있는 나의 육체가 어색했다. 아마도 생각보다 이르던 갑작스러운 한국으로의 방문, 그리고 조금은 바쁘게 지내던 일정 속에서 한국으로 간다는 생각을 곱씹지 못하던 휴가 전 시간들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색한 것이 또 있었다.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 섞여 있는 나의 모습, 언제 그랬냐는 듯이 17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원래 있던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어왔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는 나의 모습. 그 자연스러움이 어색했다. 중간 중간 서툰 모습이 드러나긴 했으나 그러한 부분도 한국 사회에 섞여있는 나의 모습이 자연스러움을 띄는 데는 방해하지 못했다.

 

실감 나지 않는 어색한 한국으로의 방문. 그러나 싫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반가웠고 눈앞에 있는 것들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던 존재들이 실재로 다가온 듯 조금은 벅찬 모습으로 그 곳에 있었다. 작은 것 하나 까지도 반갑게 다가오던 순간순간들. 기차역에서 기다리시던 아버지, 바삐 움직이는 차들 그리고 경적 소리, 밤을 밝히는 온갖 불빛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던 우리 집, 현관문 열리는 소리, 그 앞에 서 있는 어머니, 밥상에 차려져 있는 집 밥,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한국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게 다가오던 그 순간들.

 

오랜만에 찾아온 한국은 놀라웠다. 느림의 미학을 충분히 즐기고 있던 파라과이 생활에 익숙해진 뒤 한국에서 경험 할 수 있는 것들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들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처음으로 하게 되는 입국 수속조차 빨랐고 분 단위로 관리되던 기차 스케줄도 놀라웠으며 대구로 향하는 그 속도는 엄청났다. 파라과이의 차들보다 조용히 움직이지만 소음에 반비례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약간 겁을 먹게 할 정도였고 인터넷 속도는 그 단위를 내가 잘못 보고 있나 라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빨랐다. 고요하지만 소리 없이 빠르던 것들. 그 속에서 조금은 숨이 가빴다. 조용하고 약간은 어둑한 카페에 숨어들어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숨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했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던 한국에서의 시간들도 잠시, 다시 파라과이로 떠난다. 정말 꿈같던 짧은 시간. 40시간의 여정으로 지구 반대편, 세상 끝으로 떠난다. 파견된 지 17개월이 된 지금 파라과이로 돌아가면 머지않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옴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짧던 일정 속에 뭔가를 마무리 짓지 못한 느낌마저도 든다. 계획했던 모든 것은 마무리가 되었다. 아마 내 마음의 준비에 대해선 전혀 계획해 놓지 못한 탓일지도.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떠남에는 아쉬움이 따라오기 마련인가 보다.

Posted by daydream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