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로쪽에서 메트로폴리타노를 타고서 숙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이미 해가 다 떨어진 저녁. 하지만 이렇게 숙소에 들어가서 쉬다가 여행의 마지막 밤이 밋밋하게 흘러가버릴 것을 생각하니 점점 아쉬워졌다. 별 생각, 기대 없이 시작한 여행이었으나 마지막이 다가왔음에 점점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 밤을 좀 더 질질 끌고 싶은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할 까 잠시 고민하다가 바닷가로 가기로 했다. 한국을 떠난 뒤 바다에 가는 것은커녕 간접적으로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해산물조차도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접할 수 없었던 근 2. 바닷가로 가자.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사랑의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한 쪽에는 현지인 가족이 있었다. 꼬마 아이 둘이 꺄르르 웃으며 뛰어 놀던 중 부모가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꺼내서 준비하고 있었다. 케이크였다. 초를 꽂고 아이들을 불렀다. 밝은 얼굴로 케이크에 닿을 듯이 바짝 아이가 앉자 초에 불을 켰다. 그리고 들려오는 생일 축하 노래. 아이의 생일인가 보다. 노래를 모두 부른 뒤 아이는 힘껏 숨을 내쉬어 초를 껐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가족은 잠시 뒤 자리를 떴다. 가족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공원은 조금은 쓸쓸했다. 계단에 앉아 저 멀리 절벽 아래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밤늦은 시간이어서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파도소리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바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존재로 인해 조금은 무서운 감정이 일렁인다. 늦은 시간의 밤바다는 더욱 그랬다. 그래도 좋다. 끊임없이 일렁이는 파도와 시원한 그 소리.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시간도 만족스럽게 마지막 밤을 질질 끌어주진 못했다. 어떻게 하면 단단히 붙잡을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해안가를 따라 저 멀리 쇼핑센터가 있었다. 이 시간에 문을 열었을 것이란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하면 시간을 좀 더 끌 수 있을 것 같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절벽 위의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쇼핑센터에 도착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다행히 식당과 카페는 아직 열려 있었다. 이 곳은 바다를 향해 절벽 끝에 세워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곳이라면 마지막 밤을 함께 잡아놔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밤 커피를 마시기엔 좀 부담스러웠으나 오늘 밤이라면, 오늘 밤만이라도 그냥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출출한 빈 속 상태에 마셨다간 큰 부담이 갈 것 같아 뭐라도 먹어야 했다. 비교적 저렴한 식당이 몰려있는 곳으로 갔다.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먹고 싶었으나 페루에서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고르기로 했다. 때 마침 햄버거집 옆에 리마에서 유명한 샌드위치 가게의 체인점이 있었다. 비쌌다. 그 와중에 감자튀김과 샐러드가 함께 나오는 닭구이가 좀 저렴했다. 이 메뉴 하나와 생과일주스 하나를 주문했다. 음식의 양은 생각보다 엄청 많았다. 음식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닭다리를 뜯었다. 생각보다 그리 맛있진 않았다. 배가 덜 고픈 탓이었을까. 아무튼 이 가게에서 유명한건 닭구이가 아니라 샌드위치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샌드위치보다는 저렴했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결코 저렴하지 않았기에 맛도 별로 없고 배도 많이 불러왔지만 꾸역꾸역 먹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결코 마무리를 짓기에는 무리였다. 눈물을 머금으며 남은 음식을 뒤로한 채 본래 목표인 카페로 향했다. 망했다. 마감을 하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가지고 갈 수 있게라도 커피를 주문할 수 없냐고 물어보니 이 것도 안 된단다. 그 옆의 다른 카페를 보니 마찬가지. 마감을 하고 있었다. 안절부절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냥 밤을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았다. 침착하게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니 많은 가게들이 마감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문을 닫을 때였던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며 쇼핑센터 밖으로 나왔다. 컴컴한 주변. 대책 없이 멍하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문득 포기의 감정이 올라왔다. 그냥 보내야 하나보다. 더 이상 잡지 말아야 하나보다. 내일이 와야만 하나보다. 아쉬움에 머뭇거리다가 결국 그냥 숙소로 향해 인적 없이 가로등과 간판의 불빛만이 비추고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별 생각도, 준비도, 기대도 없이 시작한 여행이었으나 마지막 밤이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작이 어찌 되었든 모든 마지막엔 아쉬움이 따라오기 마련인가 보다.

Posted by daydream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