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중에 몇 번 잠에서 깼다. 잠들기 전 아프던 머리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깰 때마다 두통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나의 기대를 무참히 깨버리는 지끈한 두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에서 깨니 두통이 느껴졌던 걸까, 아니면 두통 때문에 잠에서 깼던 것일까. 그렇게 깨고 다시 잠들기를 몇 번 반복하나 보니 아침이 되었다. 일어나려고 했던 시간보다 조금 이른 때였으나 이만하면 충분히 잤다 싶은 마음에 침대 위에서 꿈틀거리는데, 아뿔싸. 두통이 너무 심하다. 일어나 앉기조차 힘든 두통이다. 오늘 아침 8시까지 여행사에 가서 투어를 할 것인지 확정해야 하는데 이 상태라면 투어는 둘째 치고 당장 여행사까지 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아니, 침대에서 일어날 수 나 있을까. 조금 움직여 보려고 할 때 마다 머리를 깨질듯이 아파왔고 그럴수록 침대 밖으로 나갈 수 가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가만히 누워 있다가 이 증세를 완화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몸을 겨우 움직여 스마트폰을 쥐어 들었고 인터넷으로 고산 증세와 완화법에 대해 검색하였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아뿔싸 싶은 몇 가지가 있었다.
무조건 천천히 걷고 호흡이 가빠지도록 하는 행등은 피할 것 - 어젯밤 우유니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사가 문을 닫을까봐 엄청 빠른 속도로 걸어 다녔다.
샤워, 머리 감기는 피할 것 - 숙소에 집을 풀고 샤워를, 특히 기름으로 떡이 져있던 머리를 박박,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감았다.
너무 오랫동안 수면을 취하지 말 것 - 장시간의 버스 이동과 잠을 자고 나면 두통이 좀 덜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찍 잠들었고 늦게 일어났다.
음. 머리가 아플 만하다 싶었다. 너무 아팠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기를 몇 십 분 후, 이러다간 정말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쳐 앉았고 간신히 느린 걸음으로 화장실에서 양치만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적절하지 못한 시기에 양치질을 한 것일까, 이젠 두통에다가 구역질까지 하려 한다. 그리고 고산 증세의 또 다른 하나인지, 침대가 좋지 않았는지, 아니면 자세가 좋지 않았는지 허리 또한 너무 아팠다. 아니, 뭐랄까. 그냥 아프다기 보단 힘이 안들어갔달까. 여행이고 뭐고 그냥 낮은 지역으로 가고 싶었다. 파라과이의 아늑한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잠시 고통 속에서 좌절해 있다가 우유니까지 왔는데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 내 머리를 내려치는 듯 한 느낌이 들었고 가만히 서있기에도 지금 허리 상태에 버거웠으나 옷을 입고 간단한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고산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해선 물을 많이 마시라는 글을 보고서 숙소에서 나서자마자 옆에 있던 가게에서 2리터짜리 물병을 사 들고 - 이 후로 고산 증세가 좀 나아질 때 까지 내 한 손엔 항상 2리터짜리 생수병이 들려 있었다. 어떤 현지인은 ‘이거 뭐냐?’라면서 날 보고 웃었다. 나도 무겁고 불편하고 우스웠지만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 여행사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정말 거북이마냥 천천히 걸어갔다. 밖으로 나와서 물을 벌컥 들이켜서인지, 아니면 살살 걸으면서 바람을 쐬어서인지 증세는 아주 조금 좋아졌고 여행사에 도착한 뒤 일일 투어를 신청하였다. 그런 뒤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방법이 없냐고 물어 보니 코카 잎으로 우려낸 차를 많이 마시고 약국에서 파는 약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이걸 먹으라고 했다. 약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도 보았지만 약은 좀 먹기가 싫었다. 약 그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평소에도 왠지 약이나 병원에 의존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이후로도 약은 먹지 않았는데 만약 머리가 계속해서 아팠다면 아마 먹었을 것 같지만 상태가 비교적 괜찮다가 악화되었다가를 반복하였기에 그냥 자연적으로 증상이 완화되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약은 먹지 않았고 굳이 뭘 먹고 싶진 않았으나 배를 채워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식당으로 가서 코카차를 포함한 아침 식사를 주문하였다. 밥을 먹으면서 사실 밥 보단 코카차에 집중하였다. 고맙게도 내가 갔던 식당은 차를 한 잔만 주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주전자를 주었었는데 살아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코카차를 흡입하였다. 사실 코카차가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심리적인 효과라도 얻기 위해 엄청 마셔대었고 혹시나 효과가 더 있을까 하는 생각에 찻잔에 떠 있는 코카잎들도 포크로 건져내어 흡사 껌을 씹듯이 으적으적 씹어대었다.
아침밥을 먹고도 투어 시작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동네를 살살 걸어 다니면서 구경 하다가 숙소로 다시 돌아가 투어를 위한 짐을 싸고 투어 시간에 맞춰 다시 숙소에서 나왔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왔었기에 여행사에 있던 의자에 멍하니 앉아 고산 증세에 도움이 될까 깊은 심호흡만 반복하며 가만히 앉아 있는데 여행사 직원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미안하다면서 투어 신청 인원수가 맞지 않아 다른 여행사와 같이 투어를 해야 된단다. 난 별 신경 쓰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하고서 여행사 앞에 도착해 있던 차에 탑승하려 하는데 일본인 한 명이 먼저 타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서 가만히 기다리는데 같이 투어를 떠나는 사람들인지 어느 동양인 한 무리가 우루루 몰려 왔다. 나를 포함해 모두 7명이 차에 탑승했는데, 어허. 나를 제외한 6명이 모두 일본인이다. 우유니까지 와서 나 혼자 미운 오리새끼 될 판이다. 이번 투어는 그냥 우유니에만 집중해야겠다 생각하며, 여행사를 향해 약간은 치밀어 오르던 분노를 가라앉히며 그렇게 투어를 시작하였다. 차 안은 자연히 일본어로 가득 찼고 나는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자기네들끼리 통성명을 하더니 한 사람이 나에게 영어로 이름을 물어본다. 이렇게 해서 영어로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였다.
“난 이름 외우는 게 엄청 어려워. 기억 못하더라도 이해해 줘. 미리 사과할게.”
아니나 다를까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무 이름도 기억이 안 났다. 이건 좀 병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내 이름, 용승을 알려주니 한 명이 자꾸 내 이름을 되뇌었다.
“욘슨. 욘~슨~. 욘~. 욘~사~마. 욘사마?”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욘사마라고 읊조리다 나에게 욘사마를 아냐고 묻는다. 어 알아, 배용준 이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욘사마라고 불렀다. 어찌 됐든 홀로 외국인인 상황에 내 존재를 기억하고 불러줄 대체 이름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어영부영 그렇게 투어가 시작되었고 차가 얼마 달리지 않아 기차 무덤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이때까지도 난 머리가 너무 아파 조용히 나가서 사진만 겨우 몇 장 찍고 차로 돌아와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떠날 시간이 되어 다른 6명이 모두 돌아왔고 차에 탑승하였다.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있었어? 너 찾았었어.”
“머리랑 허리가 너무 아파서 먼저 와서 앉아 있었어. 고산 증세야.”
그러더니 모든 사람들이 일본인 특유의 공감을 위한 감탄사를 내더니 다른 한 명이 약이 있다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야기 하라고 했다. 그 이후 투어에 함께 참석했던 사람들은 사실 스페인어는 거의 안되었고, 영어도 서로 버벅거리며 이야기하기 바빴지만 내가 심심할까봐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걸어 주며 나를 신경써줬다. 참 고마웠다. 나 또한 간간히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던 현지 가이드와 스페인어를 거의 하지 못하던 일본 친구들 사이에서 간단한 통역을 하며 투어에 어설프게 끼인 외국인, 혹은 분위기 흐려 놓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투어는 생각했던 것 보다 점점 재미있어졌다.
그 이후 몇 곳을 둘러다니며 구경을 하는데 점점 깊게 들어갈수록 땅은 점점 끝이 보이지 않는 평지가 되어가고 있었고 그 땅엔 하얀 소금으로 가득하고 육각형태를 띄며 서로 붙어있는 기이한 모습이 펼쳐졌다. 너무 아름답고 신기했지만 당장 머리가 너무 아프니 그 순간을 잘 즐기지를 못하였다. 답답하기도 하고 나 자신이 안타깝게도 느껴졌다. 이렇게 지구 반대편 먼 땅에서 우유니 투어를 하며 인생의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새삼 깊게 공감하게 되었다.
건강이 최고다.
투어 중 햇살도 엄청 강했다. 선글라스를 가져왔기에 다행이었지 이를 쓰지 않고선 제대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햇살이 엄청 강한데다가 바닥도 새하얀 소금이었기에 바닥이 햇살을 받아쳐 다시 내 눈으로 쏘아붙였다. 이 날 엄청 탔다. 캡 모자를 쓰고 있었고 얼굴엔 선크림도 발랐지만 양 귀는 홀로 밖으로 비죽 튀어 나와 햇살을 홀로 내리 받았고 그 결과 귀 끝이 화상을 입어 뱀 허물 벗듯이 껍데기가 벗겨졌다. 이리 저리 상황은 쉽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광경은 장관이었다.
마지막 투어 장소인 일몰 장소를 제외한 마지막 사진 촬영 시간이 왔다. 처음엔 서로 뻘쭘하게 사진을 찍는 둥 마는 둥 했지만 투어 가이드 겸 운전수가 공룡 장난감을 가져오고 엎드려 사진 찍을 준비를 하더니 여러 컨셉을 잡아주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서로 재미있게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하였고 여러 단체 사진과 각자가 찍고 싶던 개인 사진들을 찍었다. 그러던 중 어느새 고산 증세는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 뛰며 사진을 찍을 때는 뛰었던 높이만큼의 무게를 가진 돌덩이가 내 머리를 내려치는 것 같았지만 얌전히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일몰을 남겨 두고 나아지고 있는지라 더더욱 다행이었다.
아직 건기여서 소금 사막이 전체적으로 물에 잠긴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여행사에서는 일몰, 일출 투어를 건기에도 물이 조금 배여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하기 때문에 우유니 소금 사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쉽게 떠오르는 하늘이 반영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우유니 소금 사막 투어는 항상 날씨가 중요하다. 물이 차 있는 곳이 있더라도 구름이 잔뜩 껴있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 물에 파동이 생기면 하늘이 반영 된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전날에 일몰 투어를 떠났던 사람들이 날씨로 인해 투어가 좋지 못했다고 이야기 한 것을 들었었고 당일 투어 중 저 멀리서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봤었기에 과연 일몰 투어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으로 일몰을 위해 다시 모두 차에 몸을 싣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다. 가는 중 바닥엔 점점 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보였고 차는 속도를 줄여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조용히, 끊임없이 이동하던 차는 어느 순간 바닥에 하늘이 반사되는 모습이 보이면서 일본어 감탄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헤~에에에에~? 스고이! 스고이데스네! 야바이!(맞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하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데 바닥에 그 모습이 반영되어 또 다시 내 눈에 들어오는 그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모두가 그 모습에 넋을 잃어 멍하니 쳐다보고 또 그 아름다움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기도 하며 한참을 바라봤다. 하지만 때론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바닥에 잔잔히 깔려 있던 수면이 요동쳤다. 그럴 때마다 완전한 하늘의 반영된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 마저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숨 막힐 듯 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그리고 그 아름다움과 광대함을 제대로 바라보기조차 감당하지 못하며 한낱 작은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경외함에 압도되어 어느새 감탄사마저 입 밖으로 뱉지 못한 채 그저 대자연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그런 미미한 존재. 마치 무한대를 마주한 보잘 것 없는 작은 상수처럼 그 거대함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그런 순간.
한참을 더 있고 싶었던 그 시간들은 결국 해가 지면서 끝나버렸고 이젠 투어를 마치고 다시 우유니 마을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우유니 투어를 시작할 때에 여행사에 일일 투어를 다녀온 뒤 다음날 일출 투어를 신청해도 되냐고 물어봤었고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었기에 마을로 돌아가면 바로 일출 투어를 신청할 참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여행 일정은 그렇게 일출 투어를 한 뒤 그 날 저녁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의 수도인 라파스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투어를 마친 우리는 한참을 달려 마을로 다시 돌아왔고 그 때 시간은 저녁 8시가 조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우유니 사막을 보며 느꼈던 그 감동을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더 느끼고 싶어 바로 일출 투어를 신청하려던 그 때, 차가 여행사 앞에 도착하여 보니 모든 불은 꺼져 있었고 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 당황스럽고 난감한 상황에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우유니 사막에 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게 된 상황에 많이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현재 좋지 못한 몸 상태를 위해 하루는 좀 쉬어줘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씁쓸한 마음을 달래 보았다. 아침 시작은 엄청난 두통과 허리 통증으로 시작하였으나 투어를 마치고 난 순간 몸 상태가 비교적 많이 좋아졌기에 이대로 간다면 혹시 다음날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며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