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쿠스코 근교 반나절 투어로 모라이(Moray)와 살리네라스(Salineras)를 보러 가는 날이다. 여행이라는 기분 좋은 느낌과 하루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서인지 맞춰 놨던 알람 시간보다 훨씬 일찍 눈이 떠졌다. 일부러 좀 더 자 보려고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그냥 빨리 일어나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침대에서 일어나... ? 그러고 보니 고산 증세로 인한 두통이 없다. 새벽에도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곤히 잠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제부터 두통이 없었다. 드디어 고산에 적응을 한 것인가? 드디어 두통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이런 개운한 느낌의 아침을 얼마 만에 맞이하는 것인지 너무 감사했다. 몸에 불편함이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혹시 어찌 될지 모르니 오늘 하루도 조심하는 방향으로.


 


씻고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어제 투어를 예약했던 여행사 앞으로 이동했다. 일기 예보를 보니 날씨가 흐림으로 되어 있었지만 하늘은 맑았다. 고산 지대라서 그런지 구름은 아주 낮게 떠 있었고 그 흐름이 전체적으로 빨랐다. 아마 날씨가 바뀌더라도 급격하게 변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르마스 광장은 전날과 같이 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북적였지만 대도시에서 느껴지는 조급함이 아닌 관광지 특유의 여유로움이 그 곳의 대기를 감싸고 있었다. 여행사 앞에서 잠시 기다린 뒤 여행사 직원이 오늘 투어에 참석하는 사람을 데리고 어디론가 안내했다.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 손님을 받고 예약 하는 것과 실제로 투어를 진행하는 것은 한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사에서 예약을 받으면 이 인원들을 그 날 투어를 진행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가이드와 연결시켜 진행하는 듯 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여행사에서 온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오늘 투어 때 이용할 미니버스에는 다른 여행사들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모일 예정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탑승할 때 까지 잠시 기다린 뒤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오늘 투어를 안내할 가이드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현지인이었다. 먼저 가이드는 영어로 안내를 받을 사람들을 따로 모아 앉혔고 거기에는 나 말고 딱 두 명만 더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로 페루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멕시코 등 다양한 중남미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로 안내를 받을 사람은 나와 영국에서 온 사람(정확히는 런던. 가이드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니 런던이라고 답했다. 런던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인건가), 그리고 한국에서 오신 분이 한 분 계셨다. 같은 한국인이라 이야기를 해 보니 파라과이에 계시다가 잠시 주변국을 다니고 계신단다. 파라과이에서 온 한국인과 페루에서 만났다는 것이 신기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분은 한국에서 사시는 분이지만 파라과이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이 있어 잠시 왔다가 주변국을 여행하시는 거란다. 가이드는 먼저 스페인어로 안내를 하였고 그 뒤 우리 세 명을 위해 영어로 안내를 하였다. 그런데 영어 발음이... 영국 사람은 모국어라서 그런지 잘 알아듣는 듯 보였지만 난 영어보단 오히려 스페인어가 편했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안내를 하는 그 내용의 정도와 깊이가 영어보다 훨씬 좋았기에 그 내용에 좀 더 집중하며 듣기로 했다.

 

가이드는 유창하게 많은 정보들을 설명해 주었고 중간 중간 유쾌한 농담으로 분위기도 밝게 만들어 주었다. 첫 목적지인 모라이까지 가기 전에 쿠스코와 그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가이드를 하던 중 듣기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며 양해를 구하면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중남미에서 온 사람들을 향해 말을 하기 시작한 가이드는 사실 그들이 쓰고 있는 이 언어, 스페인어가 그들의 언어가 아닌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스페인의 침략을 받은 뒤 쓰게 된 언어일 뿐 이것이 그들의 뿌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브라질도 마찬가지. 그러면서 안데스 산맥에서 주로 사용되는 토착어인 케츄아어에 대해 이야기 하며 이 토착어들이 진정한 우리의 뿌리이며 절대 잃어버려선 안 될 것임을 강조하며 이들을 지켜내자고 강조하였다. 나 역시 가이드의 말에 동의하였다.

 

쿠스코에서 벗어나 투어 버스는 먼저 원주민들이 염색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기념품을 파는 곳에서 잠시 멈췄다. 길가에 있는 작은 입구로 들어서니 뜰이 나타났고 한 쪽에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천연 염색을 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곳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기념품을 진열해놓고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먼저 우리는 염색 과정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았고 곧 그 곳의 사람들이 나눠준 코카차를 마시며 염색 과정을 지켜보았다. 식물과 벌레 등 천연 재료만을 사용하여 실을 염색하는 과정은 흥미로웠고 그 색은 정말로 고왔다. 그렇게 염색 과정을 보여주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원주민이 염색에 사용하던 뼈로 된 도구를 보여주며 이게 어느 동물의 뼈인지를 물어봤다. 사람들은 소, 돼지, 라마 등 여러 동물 이름을 내놓았지만 모두 틀렸단다. 정답은 이 곳에서 기념품을 사지 않고 그냥 돌아간 관광객의 뼈란다. .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한 쪽에 걸려있는 신용카드를 쓸 수 있다는 사인과 전통 복장을 입은 원주민들의 모습이 만들어 내는 대조가 흥미로웠다.



좀 더 둘러 본 뒤 시간이 다 되어 버스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괜히 뒤에서 누가 따라오진 않는지 힐끗 쳐다보았다. 다음 관광객들에게 염색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가 되긴 싫었다.

 

버스가 쿠스코를 벗어날수록 주변에는 점점 높은 산과 계곡, 그리고 굽이치는 들판이 드러났다. 큰 길을 벗어나 속도를 줄여 작고 정겨운 시골길을 따라 가다 보니 그 곳에 모라이가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뒤 얼마간의 시간이 주어져 언덕 아래로 내려가 직접 가까이 갈 수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그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컸고 깊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수백 년 전 어떠한 기계도 없이 순수하게 주변 자연 환경만을 변경하여 작지 않은 농업 연구 시설을 구성하여 이러한 과학적 활동을 했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고 그들의 지혜가 정말 놀랍게 느껴진다.



모라이를 둘러 본 뒤 버스에 탑승하여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반나절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는 살리네라스였다. 이 곳은 산 중턱에서 염분을 가득 먹은 물이 흘러나오는데 옛 조상들은 이를 이용하여 비탈면에 염전을 만들었고 물이 염전 곳곳을 따라 흘러 그 곳을 채우게 한 뒤 태양광을 이용해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게끔 이 곳을 발전시킨 것이다. 버스는 느린 속도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달렸고 어느 순간 가이드가 옆을 보라며 차를 잠시 갓길에 세웠다. 그 곳엔 가파른 비탈면을 따라 수없이 많은 염전이 형성되어 있는 살리네라스가 있었다. 해발 약 3,000 미터에서 이런 거대한 염전이 있는 것이 경이로웠다.



다시 버스에 탑승하여 살리네라스까지 내려갔다. 그 곳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잠시 듣고서 자유 시간을 잠시 가졌다. 물이 처음 흘러나오는 곳으로 가까이 가서 손가락으로 물을 조금 찍어 맛보았다. 엄청 짰다. 괜히 염전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투어를 마친 뒤 쿠스코로 다시 돌아왔다. 함께 투어를 했던 한인 분께서 한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셨다. 쿠스코에도 한식당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같은 분이 운영하시는 한인 민박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중에야 쿠스코에서 한식당과 민박을 운영하시는 부부는 페루의 코이카 봉사단원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곳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잠시 쉰 다음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왔다.


비가 내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쳤다. 비에 젖은 아르마스 광장의 야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오랫동안 붙잡아 놓고 싶었으나 어김없이 밤은 깊어만 갔다.









Posted by daydream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