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기간에 출근하여 기관 분위기를 살피고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컴퓨터관련 수업뿐만 아니라 도서 대여나 아이들 대상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 아직 언어가 많이 부족하기에 눈치를 살피며 기관이 돌아가는 모습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타자수업을 진행하던 직원이 전화를 받더니 그 길로 기관을 그냥 나가버렸다. 다른 직원에게 들으니 그의 어머니께서 아프셔서 병원에 데려다 드리러 갔다는 것. 그러면서 아직 수업시간이 남아있는 타자수업 좀 맡아달라며 나에게 말한다. 헐. 나 아직 언어는커녕 마음의 준비도 되질 않았는데... 타자 수업은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각자가 연습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사실 크게 말을 하며 가르칠 부분은 없는 수업이다. 그러나 혹시 학생들이 나에게 무엇이라도 물어볼까봐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그렇게 난 타자 연습중인 학생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컴퓨터 교실로 입장하여 빈자리에 사뿐히 앉고 아무 말 없이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연습중인 아이들 주변들 시험 시간에 학생들을 감독하는 선생님처럼 조용히 살펴보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느새 수업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다른 직원이 찾아와 아이들에게 프로그램을 종료시키고 컴퓨터를 끄도록 지도하고서 아이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 수업시간 중에 정말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각종 부담감으로 인해 긴장했던 터라 정말 큰일을 해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숨 덜어내고 긴장을 풀려니 직원이 와서 하는 말
‘오후에도 니가 수업을 좀 맡아줘야겠어.’
두둥. 멘탈이 붕괴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져 앙 다문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서 ‘sí(응)’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어찌됐든 이미 벌어진 일. 오전 수업을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기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수업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이 몰려왔고 각자 자기 자리를 잡았다. 컴퓨터의 기초인 타자 수업을 들으러 온 아이들인 만큼 컴퓨터에 대해 굉장히 낯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컴퓨터를 어떻게 켜는지, 마우스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는 학생들부터 설사 사용법을 알고 있더라도 모니터 한 쪽 끝에서 다른 한 쪽 끝으로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이는데 하루 종일 걸리는 학생들까지. 말은 잘 할 수 없었지만 간단한 이야기와 단어들, 그리고 몸짓을 이용해 어떻게 컴퓨터를 켜고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켜는지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 밖에 타이핑을 하다가 나타나는 간단한 문제들을 물어오면 그에 대해 가르쳐 주며 수업을 진행하였다. 긴장을 좀 풀고서 마음에 준비를 한 덕분인지 그렇게 오후 수업도 다행히 무난하게 끝낼 수 있었다. 오늘의 수업은 어떻게든 넘겼지만 정말 나중에 정식으로 하게 될 수업을 생각하니 조금은 막막해졌다.